최근에 인텔이 내부적인 벤치마크 결과를 공개하면서 공개적으로 AMD 라이젠 프로세서의 성능과 리뷰어들이 노트북의 성능을 평가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아무래도 AMD 라이젠 프로세서의 성능이 인텔의 것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시장의 평가를 뒤집기 위한 움직임이었겠죠.
그런데 아무리 여러 방향에서 이해해보려 노력해도 이번 인텔의 발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제 생각을 정리할 겸, 그리고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볼 겸 해서 해당 내용에 대해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 목차 ]
1. 인텔의 주장
2. 개인적인 의견
3. “실성능” 테스트에 대하여
1. 인텔의 주장
최근에 많은 리뷰어들이 테스트한 결과 “11세대 타이거레이크는 소폭의 성능 향상이 있었지만 기대 이하이다”라는 평이 많습니다. 저도 아직 포스팅을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내부적으로 테스트 중인 제품들에 대한 생각도 이런 의견과 일치하고요. 그래서 인텔이 이런 여론을 뒤집기 위해서 지난 11월 마지막 주에 새로운 벤치마크 데이터를 공개했을 것으로 추정이 되네요.
여러 자료가 많지만, 인텔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AMD 라이젠 프로세서는 전원이 연결된 상태와 배터리로 구동되는 상태를 비교하면 성능 차이가 크게 난다” 는 것이었습니다. 인텔은 전원 연결 유무와 관계없이 성능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반면 AMD는 최대 38%까지 날수 있다는 것이죠.
노트북이라는 물건은 휴대성이 중요한 물건이니 배터리로 구동되는 상태에서도 성능 하락이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벤치마크 근거 결과로는 인터넷 브라우저 벤치마크인 WebXPRT / 가벼운 작업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평가하는 PC Mark 10 / 그리고 PPT 파일을 PDF로 변환하는 작업 시간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인텔은 추가로 많은 리뷰어들이 즐겨 사용하는 Cinebench 같은 결과는 라이젠 CPU가 배터리 모드에서도 성능 하락이 없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는 자료라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AMD (빨간 그래프)는 대부분의 테스트에서 배터리 모드로 구동할 때 성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PPT to PDF는 숫자가 낮을수록 좋은 결과) 그런데 Cinebench 자료는 노트북의 전원 연결 상태와 관계없이 비슷한 점수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텔이 주장하는 결론은, “노트북이 전원에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AMD가 일부 항목에서는 인텔보다 앞설수는 있다. 하지만 노트북은 휴대를 위한 물건이고 배터리 상태에서의 성능까지 고려하면 인텔이 실제 사용자 체감 성능은 더 우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2. 개인적인 의견
자, 지금까지는 저도 인내심을 가지고 최대한 인텔의 입장에서 상황 정리를 해드렸습니다. 그러면 위에 제시한 인텔의 주장 중에서 제가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나눠서 설명해보겠습니다.
먼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
- 인텔 프로세서가 대체로 배터리나 전력 효율이 좋은 편이다.
- 지속 성능과는 별개로 순간적인 작업 반응속도는 인텔 프로세서가 대체로 좋은 편이다.
- OpenGL, OpenCL, CUDA와 같은 그래픽과 연계된 연산 작업은 인텔 프로세서가 유리한 편이다.
실제로 인텔 CPU가 절전 상태(C-State)에서의 전력 보존 효율이 좋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정설입니다. AMD 마니아들도 이 부분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상적인 작업 중에는 ms 단위로 반응속도가 더 좋다고 느껴진 경우가 많았고요. (이건 주관적) 물론 이런 인텔 특유의 “빠릿함”도 라이젠 르누아르 CPU 세대에서는 거의 다 따라잡혔다고는 생각합니다.
분명히 수치화하기는 어려운 자료지만, 수십 기종의 노트북을 직접 테스트하면서 느꼈던 점이니 얼추 맞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르누아르 CPU가 아무리 멀티코어 성능이 좋아도 OpenGL과 연관된 작업에서는 어김없이 인텔이 보다 쾌적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더라고요. 이건 실제로 Cinebench OpenGL 테스트 결과에서 항상 라이젠 노트북이 더 낮은 점수를 보여주는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
- 배터리 모드에서의 성능은 노트북 제조사가 전력 설정하기 나름이다.
- 배터리 모드에서의 성능 우위를 주장하려면 소모전력 (배터리 지속력) 자료도 같이 제시해야 한다.
- 인텔은 왜 요구사양이 낮은 벤치마크 프로그램에만 집착하는가?
먼저 모든 노트북에는 제조사에서 미리 설정해둔 전력 값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터리 지속력을 중시하는 모델은 의도적으로 배터리 상태에서의 소모전력을 낮추고, 성능을 중시하는 모델은 배터리 지속시간이 짧아지더라도 CPU에 공급되는 전력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HP 노트북들은 전력 효율을 중시하는 세팅을 하는 경우가 많고, 레노버 노트북들은 반대로 성능에 비중을 둔 세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가 더 좋다고 할 수는 없고 순전히 취향의 영역이라 볼 수 있겠죠. (성능 조금 떨어져도 발열 적고 배터리 오래 가는 것이 좋은가 vs 소모전력 높고 발열 조금 있어도 성능을 쭉쭉 뽑아내는 것이 좋은가)
물론 고급 모델들은 다양한 전력 설정을 사용자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로 조절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결국 “인텔 노트북이 배터리 모드에서의 사용성이 더 뛰어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단순히 배터리 모드와 전원 연결 상태의 성능 차이만 볼 것이 아니라, 배터리 모드에서 CPU의 소모 전력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어떤 노트북의 배터리 지속력 (용량 대비 효율)이 좋은지에 대한 자료도 같이 제시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텔은 배터리 모드 상태에서 CPU의 평균적인 소모 전력과 배터리 지속력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죠. 만약 라이젠이 배터리 모드에서 소모 전력이 낮아지면서 성능이 하락하는 것이라면 이건 배터리 지속시간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설계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성능도 떨어지는데 배터리 지속력도 떨어진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만요.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최신 라이젠 CPU인 르누아르 제품들은 대부분 배터리 효율을 중시하는 세팅이 되어있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저도 현재 타이거레이크 노트북 2대를 테스트하기 위해 보유 중이기 때문에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인텔이 배터리 모드에서 엄청난 효율을 보여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효율을 중시하는 라이젠 노트북 모델만 선별해서 본인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그려낸 것인지 알수 있게 되겠죠.
그리고 제가 추가로 궁금한 점은, 왜 인텔은 CPU에 부하가 많이 걸리지 않는 벤치마크 테스트 위주로만 성능을 평가하냐는 것입니다. 물론 CPU에 높은 부하가 걸리는 스트레스 테스트나 Cinebench가 노트북의 평상시 사용자 경험을 대변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노트북의 설계력이나 CPU의 전력 효율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텔은 점차 본인에게 불리한 Cinebench 결과는 부정확한 것으로만 치부하고 SSD나 램과 같은 외부 변수가 많이 개입할 수 있는 Geekbench와 PC Mark 10 테스트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네요.
최근에 인텔이 제시하는 테스트 결과들이 대부분 근거가 빈약한 경우가 많은데, 인텔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AMD보다 인텔 제품이 더 좋다는 근거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데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대부분의 항목에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니 마케팅 관련 담당자들도 답답하겠죠.
하지만 인텔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한다면 본인들이 제시한 자료에 대한 근거는 충분히 제시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이젠 CPU가 배터리 모드에서 성능이 하락하는 증상이 있다면 그것이 의도된 절전 정책인 것인지, 그리고 동일한 환경에서 인텔과 라이젠 CPU의 소모전력을 직접적으로 비교해주지 않는 이상 이번 자료는 언론 플레이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3. “실성능” 테스트에 대하여
비슷한 맥락으로, 인텔은 작년부터 노트북의 성능을 평가할 때에는 인위적인 벤치마크보다 “실성능” (Real World Performance)를 더욱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해왔죠. 그런데 인텔의 발표 자료를 보면 인텔도 스스로 “Real World Performance”라는 것에 대해 뚜렷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저 “타협 없는 컴퓨팅” / “미래의 성능을 위한 투자” 같은 뜬구름 잡는 단어들만 나열해놓은 수준에 지나지 않죠. 제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대학생 레포트도 저런 식으로 제출하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인텔이 주장하는 “실성능”이라고 평가하는 항목이 어떤 것인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일반적인 사용자가 노트북을 구동할 때 사용하는 빈도가 높은 프로그램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크롬/워드/엑셀과 같이 순위가 높은 항목은 “Real World Perforamnce” 지표가 되는 것이고, 순위가 낮은 항목은 실제 사용자 경험과는 거리가 먼 항목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따라서 인텔은 Cinema 4D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적기 때문에 Cinebench 테스트는 “Real World Performance”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CPU에 높은 부하가 가해지는 스트레스 테스트나 Cinebench 자료가 무의미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트북이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높은 전력을 유지하면서 내부 쿨링을 잘 해내면 좋은 설계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설령 사용자가 그정도로 높은 성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부 설계가 좋으면 그만큼 노트북이 더 조용하게 구동되고 체감 발열도 적어지니 인텔이 그렇게 중시하는 “사용자 경험”이 좋아진다고 볼 수 있겠죠.
일례로, 동일한 CPU에 무게도 비슷한 2개의 노트북 내부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죠. 누가 보더라도 특정 제품의 설계가 더 좋아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테스트와 Cinebench는 그 설계력을 직접적으로 검증하는 것이고요. 그 누구도 노트북을 평상시에 CPU 100% 부하 상태로 장시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노트북으로는 웹 서핑이나 문서 편집을 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높죠. 하지만 해당 작업은 어지간한 저사양 PC로도 충분히 쾌적하게 돌아가는데 최신 CPU를 평가할 때 문서 편집 프로그램의 반응 속도를 평가하는 PC Mark 10이나 PDF 변환 시간 측정을 하는 테스트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저도 CPU의 연산력, 즉 성능이 프로그램을 구동할 때의 빠릿함(반응속도)과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0년에 노트북의 성능을 웹 브라우징이나 문서 편집이 얼마나 잘되냐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인텔은 정말 사용자 경험에 입각한 “실성능”을 중시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고성능” 벤치마크 항목에서는 완벽하게 라이젠에게 밀려버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건 개인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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