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텔의 발표나 홍보 자료들을 보면 EVO 인증 노트북이라는 문구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타이거레이크의 출시화 함께 인텔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EVO 인증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 인텔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소비자한테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 인텔의 전달력, 혹은 홍보력 문제이긴 하겠죠. (일해라 인텔) 저도 향후 리뷰에 인텔 EVO 플랫폼과 연관된 내용을 많이 다룰 예정이라 미리 한번 정리하고 가는 의미에서 간단히 이 인증제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인텔의 현재 노트북 시장에서 처한 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짚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목차 ]
1. EVO의 전신, 프로젝트 아테나
2. EVO 인증의 기준
3. 인텔 노트북의 브랜드화
4. 개인적인 생각
1. EVO의 전신, 아테나 프로젝트
인텔은 2019년에 “Project Athena” (아테나 프로젝트)를 발표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뭔가 엄청난 기획 프로젝트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냥 인텔이 제시한 “고급 노트북”의 가이드라인 스펙을 따라서 제작한 노트북에 부여해주는 인증 제도입니다.
당시 아테나 프로젝트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썬더볼트3 단자, 9시간 이상의 배터리 지속시간, i5 이상의 CPU와 8GB 이상의 램 용량, 1080p 해상도 이상의 12~15.6인치 디스플레이 규격을 준수해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델의 XPS, 삼성의 갤럭시북, HP의 엘리트북 시리즈와 같은 제품군이 모두 아테나 인증을 받은 노트북들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인증 제도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소비자가 일부러 알아보지 않는 이상 구매하는 노트북이 아테나 인증을 받았는지 여부는 물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죠. 실제로 주변에 흔히 보이는 갤럭시북 시리즈가 아테나 인증 제품인 것을 아는 분은 많이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노트북 제조사 입장에서는 추가 지출을 감수해가면서 기껏 인텔의 아테나 프로젝트 가이드라인을 따랐더니, 딱히 홍보효과도 없었던 셈이죠.
그리고 인텔이 제시한 몇가지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디자인, 쿨링, 재질이나 마감과 같은 부가적인 요소는 비교적 큰 제약 없이 설계할 수 있어서 아테나 프로젝트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고급 노트북”에 대한 보증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2. EVO 인증의 기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텔은 이런 인증 제도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9월에 진행됐던 인텔 타이거레이크 CPU 발표행사 때 새로운 EVO 인증 제도를 소개했죠.
사실상 전반적인 내용은 프로젝트 아테나와 동일하고, 기존의 썬더볼트3 규격이 썬더볼트4로 변경된 것과 새로운 와이파이6 규격 지원이 의무화 됐다는 점 정도가 차이점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그리고 과거에 쥐도 새도 모르게 아테나 인증을 해주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EVO 인증을 거치면 노트북에 당당하게 EVO 스티커를 부착해줍니다.
- 절전 상태에서 빠르게 깨어나야 함
- 인텔 i5 이상의 CPU 사양 (당연히 AMD는 제외)
- 윈도우10, 혹은 크롬OS 운영체제 (리눅스 제외)
- 8GB 이상의 듀얼채널 메모리
- 256GB 이상의 NVMe SSD
- 인텔 GNA 2.0 지원
- 원거리 음성 인식 / 사용자 감지 절전 기능
- 9시간 이상의 배터리 지속시간
- 썬더볼트4 / 와이파이6 지원
- 12~15.6인치 크기
- 터치 디스플레이 옵션, 프리시전 터치패드 드라이버
- 15nm 이하의 쿨링팬 크기
- 얇고 가벼워야 함 (정확한 기준은 명시되어 있지 않음)
제가 대략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만 발췌해봤는데, 대략적인 느낌은 잡으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AI 기능이나 단자 규격, 노트북 크기와 같은 성능 외적인 기준이 많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EVO 인증은 전반적인 사용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향이 강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이걸 뒤집어 말하면 그런 만큼 EVO 인증 노트북이라고 해서 꼭 성능이 좋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어디에도 쿨링 성능이나 전력 기준에 대한 기준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 대신 휴대성, 디스플레이 품질, 베젤리스 디자인 정도는 어느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인증제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3. 인텔 노트북의 브랜드화
EVO 인증은 표면적으로 소비자와 제조사에게 “좋은 노트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저는 인텔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이유는 역시 AMD의 빠른 성장 때문이지 않을까 싶고요.
아직은 인텔이 노트북 CPU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절대 강자인 것은 맞지만, 100만원 이하의 가성비 제품군에서는 AMD 라이젠이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죠. 최근 라이젠 르누아르 노트북은 품귀 현상인데다가 각종 오픈마켓 세일 기간에는 인텔 제품만 풀리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인텔은 라이젠 르누아르 CPU를 성능적으로, 혹은 가격적으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빼앗긴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을텐데 과거에 오래동안 기술 개발에 소흘했던 탓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야심차게 출시한 11세대 타이거레이크 CPU도 확실하게 인텔의 승리라고 보기 애매한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인텔에게 남은 선택지는 아직 AMD 라이젠이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프리미엄 노트북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사수하는 수밖에 없을겁니다. 그래서 작년(2019)부터 아테나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에는 EVO 인증 시스템 하에 “인텔 노트북 = 고급” 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한거겠죠.
제조사 입장에서는 프리미엄 노트북에 인텔의 EVO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AMD CPU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효과도 있었을테고요. 실제로 올해 출시됐던 라이젠 르누아르 노트북들은 대부분 저가형 모델이어서 CPU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디자인, 발열, 디스플레이와 같은 부가적인 요소들에서 아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텔의 소심한 1승?)
이제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EVO 스티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테니 아무래도 인텔의 인증제도의 영향력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인텔의 의도대로 EVO 노트북들이 소비자 사이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요.
4. 개인적인 생각
결국 2021년은 공격적으로 프리미엄 노트북 시장을 공략하는 AMD의 공격과 그걸 방어해내는 인텔의 방어 대결 구도로 흘러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인텔의 EVO 인증제도는 그 대결을 준비하기 위한 무기 중 하나고요.
만약 인텔이 프리미엄 노트북 시장을 지켜내면서 시간을 버는 사이에 라이젠을 뛰어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다시 전세는 역전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인텔이 라이젠을 압도할만한 CPU 양산에 성공하기 전에 AMD에게 완전히 잠식당한다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타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요.
물론 EVO 인증을 통해 인텔이 얼마나 브랜드 이미지가 상승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결국 근본적인 CPU 성능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일시적인 눈속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향후 출시될 인텔 로켓레이크와 엘더레이크 시리즈에서는 뭔가 한방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저도 인텔이 망해가는 결과를 원하지는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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